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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다시 싸이솜분에서

다시 씨엥쿠앙을 떠나 거칠고 궂은 1d 국도와 5번 국도를 달려 싸이솜분 아누붱으로 돌아온다. 혹서기인 지금의 폭염을 피할 폰사완 만큼 훌륭한 피서지이기도 하고 몽족의 절대 인구수는 아니지만 상대 인구수가 많기도 하고 라오스의 주도 중에서 가장 작고 조용한 도시이기도 하고 라오스에서 제일 높은 산인 푸비아 산과 그 산줄기들이 만든 때가 덜 묻은 자연이 있어서 그리고 그 자연 가까이에 저렴하고 깨끗하고 친절한 숙소가 있어서 돌아온다. 그렇게 보름을 머물며 넹예로 전망대와 왕남키아오 유원지를 하루씩 다녀온 것 말고는 거의 매일을 초록 천국인 푸후아론 산을 오른다. 매일을 출근했더니 산 주인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주인 아주머니와 아이들 까지 와도 가까워지고 심지어 두번이나 얼마 되지 않은 만 킵의 입장료를 ..

in 2026 2026.06.26

14. 동화가 되는 마을 in 라오스 싸이솜분주 아오깡 마을

아오깡은 아누웡의 남쪽 높은 산 너머에 있다. 아오깡에는 푸비아에서 시작한 맑고 얕은 물이 흐른다. 아오깡에는 그 물을 따라 화려하지 않은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아오깡에는 그 물을 따라 요란하지 않게 꽃이 피고 아오깡에는 그 물을 따라 풍족하지 않을 열매가 열린다. 그렇게 아오깡에는 아오깡이 모르는 아오깡의 동화가 생겨나고 그래서 아오깡에는 아오깡이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아오깡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초라하지는 않은 그럼에도 아오깡에는 요란하진 않지만 적막하지는 않은 그럼에도 아오깡에는 풍족하진 않지만 모자라지는 않은 어제 같은 오늘의 삶이 세상의 소문과 세상의 관심에 상관없이 이어진다.

in 2026 2026.06.05

13. 초록이 스며든다 in 라오스 싸이솜분주 푸후아론

씨엥쿠앙에서의 오랜 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려 굵은 빗줄기가 훑고 지나간 길을 따라 더 높고 더 깊어서 더 고립되고 더 비밀스러운 땅, 싸이솜분으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세 번째 만에 푸후아론 산에 깔려있는 완벽한 초록 세상을 만난다. 오래전 첫 번째에는 산이 없었고 겨울철 두 번째에는 갈색만 있었다. 푸후아론은 푸비아에 비해 아누웡 시내에서 멀지 않고 개인의 소유여서 입산 통제가 없고 산을 오르고 내리기에 어렵지 않고 그래서 소문을 따라 많은 라오스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곳의 수백만 평 되는 구릉지에는 십여 개의 완만한 오름이 있고 오름을 잇는 소와 사람과 바람이 다닌 길이 있다. 며칠 동안 그 길, 하나 하나를 밟으며 신발 밑창에 초록이 점점 배여듯 온 마음은 저절로 초록에 빠진다.

in 2026 2026.05.31

12. 계절이 바뀌는 자리에서 in 라오스 폰사완

계절이 바뀌는 자리. 탁한 서쪽의 바람은 습한 남쪽의 바람으로 치환되고, 흩어지던 마른 구름은 쌓여가는 비구름이 되고, 연무에 오염된 하늘은 굵은 빗줄기로 정화되고, 화기에 그을린 검은 죽은 땅은 새싹의 초록으로 다시 태어나고.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고도가 주는 선선함에 더해 우기에 따라온 적적함에 취해 어디로든 떠나지 못하고 누구든 그리지 못하고 무엇이든 하지 못하고, 그저 겨우 틈을 내어 해질녘의 빛을 쫓아다니고 익숙한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의 실루엣을 담고. 계절이 바뀌는 그 자리에서 나는 나를 믿으니 나는 나를 그대로 놓아둔다.

in 2026 2026.05.12

11. 2026년 라오스 새해, 삐마이 물축제

짙은 연무가 해를 가린 시절 긴 전쟁이 일상을 해체하는 시절 불투명한 것이 투명한 것을 짓누르는 시절 그 시절의 불투명한 시간은 흐르고 그 시절의 불투명한 새해는 찾아오고 그 시절의 불투명한 물축제가 열리고 그 시절의 선명한 사람들이 모이고 그 시절의 선명한 색이 거리를 채우고 그 시절의 선명한 소리가 밤까지 이어지고. 며칠이라도, 물이 찌든 대기를 씻고 팍팍한 일상을 위로하고 선명한 것을 퍼트리고. 이곳에서라도, 물이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고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사람 사이의 소통을 넓히고. 나에게서라도, 물이 어제의 미련을 잊게 하고 오늘의 지금을 살게 하고 내일의 욕심을 털게 하고. 다시 세상은 선명과 불투명이 기대와 좌절이 희망과 절망이 반복되겠지만 다시 사람 사이는 벽이 쌓이고 거리가 멀어..

in 2026 2026.04.19

10. 불분명한 시절 in 폰사완, 농헷, 남깐 국경

라오스 새해를 앞두고 분명한 것이 사라진다. 미세먼지로 인해서 산의 형상도 불투명하고 구릉지의 색깔도 불투명하고 사람의 얼굴도 불투명하고 새소리도 불투명하고 별의 빛도 불투명하다. 세상의 내일도 불투명하다. 파괴자와 살인자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종전 예측이 불투명하고 인간의 상식이 불투명하고 보편적인 도덕이 불투명하고 국가 간의 질서가 불투명하고 공존과 공영의 내일도 불투명하다. 이제는 나의 길도 불투명하다. 단 하나의 분명한 것을 찾으려 불쾌한 대기를 뚫고 뚫지만 불편한 화면을 넘기고 넘기지만 불투명한 것만 더욱 분명해진다, 분명한 것은 더욱 불투명해진다.

in 2026 2026.04.13

9. 3월의 끝내며 in 므앙목, 푸삼쑴, 폰사완 of 라오스

나의 3월은, 유류 부족으로 인한 이동의 제한에 보태어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심리적 불만과 우기 말의 고온과 다습한 대기로 인한 육체적 불편으로 시작한다. 해마다 이 즈음에는 높아서 선선한 땅, 씨엥쿠앙으로 이동하긴 하지만 어느 멍청한 데다 탐욕스러운 지도자와 어느 악랄하고 괴팍한 살인자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2026년 3월의 씨엥쿠앙은 휴양지의 역할에 더해 오래도록 안정하게 머무를 나의 피난처가 된다. 그래서 비엔티안을 떠나 빡산을 거쳐 타씨에서 항상 다니던 길이 아닌 므앙목을 거쳐 라오스에서 세 번째로 높은 2629미터의 푸삼쑴 산을 휘돈다. 해발 2200미터의 길에서 맞는 가볍고 시원한 대기를 뚫고 사람의 흔적을 찾기가 힘든 산과 골을 따라 씨엥쿠앙의 폰사완에 이른다. 그러는 사이 멍청한 지도자는 더..

in 2026 2026.03.31

8. 바람을 따라 on 타켁루프 북변, 남파오 국경, 왕흐아 그리고 원점

바람을 따라 어디든 머문다. 빗 창살에 갇혀 있는 꽃잎 위에 머물고 어린 스님의 무거운 침묵 곁에 머물고 빼곡한 돌바위 틈틈에 머물고 돌바위를 건너는 가뿐 호흡의 박자에 머물고 높은 그림자에 짓눌린 너른 습지에 머물고 두꺼운 안개를 헤집는 날개 끝에 머물고 옅어진 안개 방울에도 머문다. 바람을 따라 언제든 떠난다. 국경의 이쪽으로 떠나고 국경의 저쪽으로 떠나고 석공의 아찔한 손끝으로 떠나고 꽃이 머문 자리로 떠나고 짙은 고독이 베긴 높은 땅으로 떠나고 그 땅에 서려진 쫓긴 이들의 슬픔으로 떠나고 그 땅을 벗어나는 아쉬움에서도 떠난다. 그리고 나니 다시 원점에 머물고, 원점으로 떠난다.

in 2026 2026.03.15

7. 므앙프앙에서 드는 생각

싸이솜분을 떠나 빡산을 거쳐 비엔티안으로 온 후 농카이 국경에서 비자런을 거절당한 후 빡산으로 다시 내려와서 븡깐 국경에서 급하게 비자런을 한 후 비엔티안으로 다시 올라와서 므앙프앙까지 올라온 후 하룻밤 방비엥에서 머물고 다시 므앙프앙으로 내려온 후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시간 동안 적정한 음량의 소리에 어울리고 적합한 구도의 형상에 만족하며 적절한 밀도의 동기를 만든 후 아쉬움 없이 므앙프앙을 떠나 다시 비엔티엔에서 머문 후 다시 빡산 까지 내려온다. 지구의 좌표 위에 갇혀 있는 한, 나의 관념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언제든 떠날 수 있고 나는 어디에든 머물 수 있다.

in 2026 202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