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마지막 길 from 비엔티안 to 방비엥 달리는 만큼 만나고 만나는 만큼 쌓이고 쌓이는 만큼 그립고 그리운 만큼 아프고. 달리는 만큼 날리고 날리는 만큼 가볍고 가벼운 만큼 외롭고 외로운 만큼 허하고. 올해 보다 내년에는 더 그러해서 달려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버리기를 달려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를 On the road of 2023 2023.12.31
24. 남칸-폰사완-타켁루프-타켁루프-비엔티안 달린다. 고분 하게 살지 않은 몽족의 설을 달리고 수백 킬로에 떠도는 안개 같은 먼지를 헤치며 달리고 보름동안에 세번의 같은 루프를 달리고 의미없는 스무 일을 달린다. 허영의 언어를 달고 위선의 동작을 이끌며 오만의 사고를 목도하면서 그럼에도 의미없는 스무 일을 달린다. 그리고 잠시 머문 사이에 나를 돌아본다. 나의 얇아진 지갑을, 나의 먼지때가 베긴 옷을, 나의 피곤해진 몸을, 나의 부족한 선의를, 나의 마음이 만든 의미없는 나의 모든 상처를. On the road of 2023 2023.12.22
23. 이면裏面 from 비엔티안 to 남칸 국경 비엔티안에서 빡산, 므앙쿤, 폰사완, 농헷을 거쳐 남칸 국경에서 종점과 시점을 동시에 찍고 다시 폰사완으로 나오는 700km의 위에서 슬퍼도 눈이 없어서 울지 못하는 이면을 쌀반죽이 굽혀서 쌀국수가 되는 이면을 포탄 숟가락을 만들기 위해 주형틀을 먼저 만들어야하는 이면을 5000년 전의 영광이 50년 전의 치욕으로 망가진 이면을 자비 없는 폭격에 동굴에 가득 찼을 죽음만큼 불안했던 이면을 중심에서 멀어진 변방의 방치된 이면을 방치가 거듭되어 불편해지는 이면을 국경이 형제를 가르고 마을을 나누는 이면을 그나마 국경 완충지역의 일요 변경시장에서 만나는 반가운 이면을 드러내기 힘들고 찾아내기 어려운 이면은 어디에나 있을 테지만. On the road of 2023 2023.12.12
22. 사완나캣-타켁루프-비엔티안 타켁의 메콩강변에 있는 덧칠된 시코타봉 왕국의 흔적을 더듬고 타켁에서 뇨말랏까지 루프의 남변을 달린다. 웅장하지만 저렴한, 무뚝뚝하지만 잔정이 있는 뷰튼리조트에서 이틀을 머물며 루프의 속은 어떨까 싶어서 살짝 들여다 보지만 사람이 밟은 길은 바람이 훑은 결로 사람이 만든 소음은 바람이 부딪히는 소리로 점점 바뀌어간다. 나는 사람인 이유로 바람의 세상이 낯설어서 왔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지만 캄땜은 사람이 아닌 이유로 낯선 사람의 세상에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락사오까지 이어지는 루프의 동변으로 올라간다. 타랑에서는 남튼호수를 안고 사는 강인한 사람들을 만나고 반까탄에서는 이방인을 반기는 수줍은 소녀들을 만난다. 푸타봉 산그늘 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루프의 북변을 달린다. 루프의 북변인 8번 도로는 베트.. On the road of 2023 2023.12.04
21. 천국의 땅, 사완나캣 빡세를 떠나 13번 도로를 타고 북으로 향하다가 메콩의 우안을 따라 사완나캣에 이르려고 방향을 왼쪽으로 튼다. 강변의 돌집stone house,흐안힌에는 종교와 권력이 부딪힌 시간의 흔적이 있다. 시코타봉Sikottabong 왕국 시절에 힌두 성전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크메르 제국의 황제 자야바르만VII의 종교적 욕망을 거쳐 란상 왕국의 대왕 세타티랏의 야심과 시암 왕조의 식민지 굴욕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겨우 남은 것은 옹색한 이야기와 허물어지는 형체뿐이다. 성스러운 불탑인 폰탑ThatPhonh은 돌집에서 동북방향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있다. 폰탑의 이야기는 돌집의 이야기보다 더 분명치 않은데 불기 236년의 12번째 달에 세웠다는 이야기나 인도의 석공이 깎고 다듬었다는 이야기나 150년을 거쳐 완공.. On the road of 2023 2023.11.24
20. 붉은 빡세 다낭에서 출발하여 보이BoY국경을 넘고 볼라벤 고원을 가로질러 빡세PakSe에 도착한다. 거의 반년만에 돌아왔슴에도 세상의 속도와 방향에 따라 새로운 것이 많이 생겼고 익숙한 것이 많이 떠났고 남은 것은 여전히 따뜻하다. 메콩을 안고 지는 노을도 여전히 남아있어서 서늘한 저녁 바람 가운데에서도 시감은 따뜻하다. 남은 것이 뜨거워져 데기 전에 붉은 빡세를 떠나기 위한 채비를 해야겠다. On the road of 2023 2023.11.21
19. 기다림 in 다낭 사람을 기다리고 해를 기다리고 물때를 기다리고 새벽을 기다리고 생각을 기다리고 떠남을 기다리고 늦어도 기다리고 흐려도 기다리고 지쳐도 기다리고 길어도 기다리고 얽혀도 기다리고 멈춰도 기다리고 삶은 실처럼 이어지는 기다림 죽음은 실처럼 끊어지는 기다림 On the road of 2023 2023.11.14
18. 정체 20일 in 다낭 방향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속도를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아직은 가야 할 공간이 많고 시간마저 충분합니다. 굵은 빗방울과 거센 바람줄기를 피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행위를 아끼고 있습니다, 말을 줄이고 있습니다, 생각을 좁히고 있습니다, 의미를 버리고 있습니다. 다시 나의 이성에 의한 방향을, 나의 감성에 의한 속도를 맞추어 둡니다. 나는 떠나고 당신은 사라지는 방향과 속도를 맞추어 둡니다. On the road of 2023 2023.11.01
17. 남행 1400km from 무깡차이 to 다낭 길은 자연보다 사람이 막을 때 더 잔인하다. 느지막이 무깡차이를 떠나 응이어로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검은 강을 건너서 젖과 차의 땅, 목쩌우MocChau에 이른다. 무리들에게 기름진 고원의 목쩌우를 보여주고픈 마음으로 7월 말에 들렀으니 달포만에 목쩌우를 다시 찾은 셈이다. 무리의 K와 R은 바삐 나메오 국경으로 이동하고 남은 L과 함께 여유로이 빗길을 달려 마이쩌우MaiChau로 옮겨온다. 남쪽으로 갈수록 빗줄기는 굵어지고 빗물은 고여있다. L과 헤어지고 가까운 라오스 입경 지점인 나메오Nameo로 간다. 2달 전에 자유로웠던 베트남 오토바이의 국경 출입이 잔인하게 막혀버렸다. 자연이 막은 길은 조금의 여유를 주며 뚫리기도 하는데 사람이 막은 길은 어떠한 사정에도 열리지가 않는다. K와 R, 역시 길이 .. On the road of 2023 2023.10.18
16. 무깡차이의 몽족, 경계의 사람들 나무와 강의 경계, 이긴 자와 진 자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희망과 절망의 경계. 혼돈의 시간 동안 입체의 공간을 만들며. 하늘보다 땅을 보는 것이, 앉은 것 보다 서 있는 것이, 쉬는 것 보다 움직이는 것이, 평평한 것 보다 비탈진 것이 익숙하고도 편안한. 이기진 못하더라도 머리 숙이지 않기 위해서 잘 살진 못하더라도 빌어먹지 않기 위해서 꺾이더라도 무릎 꿇지 않기 위해서. 또 한 층의 계단을 만들고 또 한 뼘의 경계를 넓히고. On the road of 2023 2023.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