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세 10

3. Rainy way from 망덴 to 빡세

끈적한 바람결의 끄트머리에서 모인 무채색의 비구름이 온 하늘을 메우고 메우고도 남은 구름이 땅으로 떨어진다. 우기는 이렇게 시작했고 앞으로 반년은 비를 피하며 머물지 비를 맞으며 달릴지에 대한 선택을 추가해야 한다. 망덴MangDen을 떠나는 새벽에도 보이Boy국경을 넘는 아침에도 볼라벤Bolaven고원을 지나는 한낮에도 빡세Pakse에 도착하는 저녁에도 바람의 습도를 가늠하고 구름의 채도를 주시하고 빗줄기의 굵기를 점검해야 한다.

On the road of 2023 2023.06.15

7.빡세-보이 국경-플레이껀-콘툼-플레이쿠-부온마투옷-달랏

거의 한 달을 빡세와 그 주변을 맴돈다. 강제된 시간이 다가왔으니 볼라벤 고원을 넘고 안남산맥을 건너 베트남 방향으로 움직여야겠다. 북쪽만큼은 아니지만 라오스 남쪽에도 산과 들을 태우는 불 때문에 연무가 세상을 가리고 탄내가 모든 공간에 스며든다. 우기의 비구름이 몰려오기 전 까지는 견뎌야 할 고난 같지 않은 고난이다. 빡세에서 300여 km를 달려서 해 질 무렵에 베트남의 국경 도시 플레이껀에 도착한다. 익숙한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고 익숙한 숙소에서 잠을 자고 익숙한 시간에 일어나 시동을 걸고 남쪽 방향으로 떠난다. 플레이껀에서 시작한 베트남 중부 고원은 베트남 중서부의 다섯 개 성에 걸쳐있는 높고 평평한 땅이다. 고원은 지역별, 지방별의 명칭으로 분리되고 고도의 차이도 확연하다. 가령 콘툼 고원의 ..

Coronaized 2023 2023.03.12

6. 빡세-볼라벤 고원-왓푸-시판돈

삶의 질이, 최소한 2023년 2월의 라오스 빡세에서는, 온도와 습도에 좌우되는 것 같다. 고온다습한 날씨 탓에 영역은 에어컨 바람이 있는 객실로 한정된다. 사람을 만날 기회도, 사건이 생길 공간도, 사고를 할 범위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딱히 나쁠 일은 아니지만 한계치인 3일을 보내니 환경에 사육되는 기분이 들어 선선한 볼라벤 고원으로 둥지를 옮긴다. 볼라벤의 세상, 특히 구석구석 골짜기의 변화는 더디다. 그럼에도 외부 세상과는 꾸준하게 교류하고 있고 확연한 변화도 목격된다. 언덕이 깎이고 물길이 바뀌고 건물이 생겨난다. 그대로 머무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이치이니 불평이나 바램도 없다. 날씨도 그대로 머무질 않는다. 다시 서늘해져서 빡세로 내려간다. 사람을 만나 주변의 세상을 동행한다. 사건이 생겨..

Coronaized 2023 2023.02.24

5. 남지앙 국경 - 다낭 - 보이/푸끄아 국경 - 빡세

라오스 닥쯩에서 달라붙은 한기와 습기는 여전히 한산한 남지앙 국경 너머까지 따라온다. 수차례 다녀 본 길이지만 아직도 좁고 울퉁불퉁하고 좌우와 상하의 굴곡이 심한 남지앙 국경에서 탄미까지의 80km의 내리막 길은 익숙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흥미롭지도 않다. 이 불편하고 덤덤한 주행의 감정은 송봉 호수 즈음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사이에 사라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1월 25일에 국경을 넘어 다낭에 와서 2월 6일에 다낭을 떠나기 까지 12박 13일 동안 4곳의 숙소를 옮겨 다닌 것 외에 크게 한 일이 없다. 다니기 좋을 맑고 선선한 날씨였는데도 의지가 없으니 갈 곳도, 할 것도 없이 가성비 높은 다낭의 숙식 시설 주변만 배회한다. 한심하게도 보이겠지만 나를 위해 변명하자면 나는 이미 여행자가 아니고..

Coronaized 2023 2023.02.08

4. 빡세 - 세꽁 - 닥쯩 - 닥따옥 국경

몇 년째 설을 길 위에서 맞는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인연들과 떡국을 먹는다. 설맞이 폭죽 소음 속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빡세를 떠나 동쪽으로 길을 나선다. 빡송의 1971 카페에 들러 호흡을 가다듬고 볼라벤 고원의 동쪽에 있는 따익스아 폭포를 오랜만에 들러봐야겠다. 이 곳은 빡송의 갈림길에서 가운데 길로 진행하는 볼라벤 큰 루프의 언저리에 있다. 대략 갈림길에서 40km를 간 후 오른쪽 황톳길을 6km 정도 가면 나온다. 오래전에 비해 자연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데 숙박 시설이 텐트 위주에서 객실 시설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고원의 가장자리에 있다보니 찾는 이가 드문 것 같다만 절대자연, 절대고요를 찾아 투숙하는 객의 흔적이 보인다. 고원의 동쪽 사면을 완만하게 내려오면 벵푸캄 삼거리가 나오는데..

Coronaized 2023 2023.01.26

3. 라러이 국경 - 살라완 - 빡세 - 시판돈 - 수쿠마 - 빡세

라러이 국경의 베트남과 라오스의 양국 심사소 거리가 무려 4km가 된다. 그 사이 라오스 영역 안에는 마을도 있고 학교도 있어서 대개의 국경이 가지는 특별한 긴장을 많이 완화해 준다. 누구에게나 그러했는지 누구의 강아지마저 국제버스편을 이용해서 국경을 넘어 베트남으로 간다. 더해서 자주 드나든 탓에 알게된 심사관까지 있으니 불가한 일마저 처리하며 편하게 오토바이와 함께 라오스로 들어온다. 국경을 넘으며 찬비는 그쳤고 강풍은 누그러졌다. 안남산맥이 나라를 나누는 것뿐 아니라 날씨도 구분 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경에서 완만한 경사길을 65km 내려오면 따오이 사람들의 중심인 따오이 시장이 나오고 다시 더욱 완만해진 경사길을 80km 내려오면 살라완주의 주도인 살라완에 도착한다. 해가 졌으니 길을 멈추..

Coronaized 2023 2023.01.25

29. 그림자가 빛을 먹는 밤까지 from 다낭 to 빡세

한 달만에 다낭에서 보이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향한다. 매달 1번 이상을 국경을 넘다 보니 이제는 딱딱함이 주는 긴장마저 사라졌다. 어떤 국경에서는 어느 곳으로 가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익숙해졌다. 이런 편안함과 익숙함에도 새롭게 만나는 것이 있어서 다시 길 위에 설 수 있나 보다. 비록 그 새로움이 혐오스럽거나 공포스럽거나 고통스럽더라도 살아있음을 자각하게 해 주니 고마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만이 주는 미세하고 정밀한 새로움마저 간혹 느끼게 된다. 국경에서 사이세타에 이르는 100여 킬로미터의 길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사방이 온통 빽빽한 밀림이며, 드문드문 있는 마을의 규모도 형태도 거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새롭게 만나는 것이 있고 새롭게 생겨나는 마음이 있다. 방치되어 사라져가는 나..

Coronaized 2022 2022.11.08

25. 해제解制 in 빡세 and 땃로

지난 3개월의 우안거雨安居 동안 마음에 품은 것을 풀어봅니다. 스승에게 물어 답을 구합니다. 대중에게 답을 전합니다. 그리고 다시 길고 거친 만행을 떠납니다. 매해 한 뼘씩 대자유에 가까워집니다. 그대로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고 나 아닌 것은 하나도 없고 괴롭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 보이는 세상에서 부처가 사라지고 분별이 없어지고 진리가 별 것 아닌 세상의 속도 아니고 세상의 겉도 아닌 세상으로 한 걸음 다가갑니다. 올 해에도 묶은 것을 풀어봅니다.

Coronaized 2022 2022.10.10

24. 떠나지 않았다면 모를 일들 from 아타프 to 빡세

머물렀다면 모를 일들 아타프Attapeau를 쓸어내리는 장대비를, 빗소리에 묻혀오는 추억을, 빗물에 초라해진 세상을. 몰라도 되는 일들. 머물렀다면 모를 일들 탕벵ThangBeng으로 가는 끈적이는 길을, 길 위에 쏟는 긴장을, 변방에 어울린 궁색을, 몰라도 되는 일들. 머물렀다면 모를 일들 자본이 고난을 해소하는 일을, 자본이 풍경을 바꾸는 일을, 자본이 사람을 모으는 일을, 자본이 자연에 어울리는 일을, 몰라도 되는 일들. 머물렀다면 모를 일들 빡세Pakse가 고향 같은 일을, 지난 내가 거기 있었다는 일을, 그러나 나는 머무를 수는 없다는 일을, 알아서 괜찮은 일들.

Coronaized 2022 2022.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