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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그림자가 빛을 먹는 밤까지 from 다낭 to 빡세

한 달만에 다낭에서 보이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향한다. 매달 1번 이상을 국경을 넘다 보니 이제는 딱딱함이 주는 긴장마저 사라졌다. 어떤 국경에서는 어느 곳으로 가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익숙해졌다. 이런 편안함과 익숙함에도 새롭게 만나는 것이 있어서 다시 길 위에 설 수 있나 보다. 비록 그 새로움이 혐오스럽거나 공포스럽거나 고통스럽더라도 살아있음을 자각하게 해 주니 고마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만이 주는 미세하고 정밀한 새로움마저 간혹 느끼게 된다. 국경에서 사이세타에 이르는 100여 킬로미터의 길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사방이 온통 빽빽한 밀림이며, 드문드문 있는 마을의 규모도 형태도 거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새롭게 만나는 것이 있고 새롭게 생겨나는 마음이 있다. 방치되어 사라져가는 나..

Coronaized 2022 2022.11.08

28.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 - 일체유심조 ( 一切唯心造) in 호이안

마음이 마음에게 시킨다. 낮은 웃음조차 짓지 말라고 다그친다. 진혼의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부조리한 현상을 이치에 맞게 부수라 한다. 분노를 정제하지 말라고 한다. 지옥을 방치한 자에게 심판을 내리라 한다. 그날, 그곳의 고통을 느끼라고 한다. 그날, 그곳의 슬픔을 위로하라고 한다. 어리석음이 순환되는 공정이 부정이 되고 상식이 무식이 되는 불합리한 세상을 마음이 마음을 시켜 지나치지 말라고 한다. 다시 분노는 모인다. 불이 켜진다. 어리석은 고리를 끊는다.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고 부순다.

Coronaized 2022 2022.10.30

27. 다시 in 다낭 and 남지앙 국경

돌고 돌아서 다시 밤이 밝아지고 다시 홀로 서성이고 다시 바다는 잠잠해지고 다시 발자국은 쌓이고 다시 국경을 넘어가고 다시 국경을 넘어오고 다시 꼬투Cotu 사람을 만나고 다시 그들의 노동을 응원하고 다시 그들의 흔적을 새기고 다시 비는 쏟아지고 다시 세상은 잠기고 다시 빗속에서 비를 말리고 다시 돌고 돌 채비를 마치고

Coronaized 2022 2022.10.26

26. 물이 넘친다 from 땃로, 라오스 to 다낭, 베트남 via 라러이

대게 억판사OkPhansa-우안거의 해제일- 무렵이면 우기는 끝이 났는데 올해의 빗줄기는 끝이 보이질 않는다. 땃로Tadlo를 떠나 라러이Lalay 국경을 넘어 베트남으로 입국하는 동안에도, 다시 아러이Aroi를 거쳐 후에Hue에 이르기까지도 대기는 축축하다. 랑꼬Rangco호수의 일부만이 빗물에 젖지 않은 옥색을 보일 정도이며 후에의 다리는 곧 물살에 깎여 무너질 것 같다. 길 위를 달리는 모든 이가 빗물에 쓸려가지 않기를... 축축한 길을 달려 다낭Danang에 이른 것이 10월 13일이었고 그날 오후부터 굵은 빗줄기가 밤새 대지에 꽂혔으며 빗물은 모든 지면에 스며들었다. 도로에 넘친 물은 지하에 쌓이고 지하에 주차한 오토바이의 틈까지 스며들었다. 세상에는 빗물에 꽂히는 요란한 빗소리와 빗물에 잠겨가..

Coronaized 2022 2022.10.17

25. 해제解制 in 빡세 and 땃로

지난 3개월의 우안거雨安居 동안 마음에 품은 것을 풀어봅니다. 스승에게 물어 답을 구합니다. 대중에게 답을 전합니다. 그리고 다시 길고 거친 만행을 떠납니다. 매해 한 뼘씩 대자유에 가까워집니다. 그대로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고 나 아닌 것은 하나도 없고 괴롭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 보이는 세상에서 부처가 사라지고 분별이 없어지고 진리가 별 것 아닌 세상의 속도 아니고 세상의 겉도 아닌 세상으로 한 걸음 다가갑니다. 올 해에도 묶은 것을 풀어봅니다.

Coronaized 2022 2022.10.10

24. 떠나지 않았다면 모를 일들 from 아타프 to 빡세

머물렀다면 모를 일들 아타프Attapeau를 쓸어내리는 장대비를, 빗소리에 묻혀오는 추억을, 빗물에 초라해진 세상을. 몰라도 되는 일들. 머물렀다면 모를 일들 탕벵ThangBeng으로 가는 끈적이는 길을, 길 위에 쏟는 긴장을, 변방에 어울린 궁색을, 몰라도 되는 일들. 머물렀다면 모를 일들 자본이 고난을 해소하는 일을, 자본이 풍경을 바꾸는 일을, 자본이 사람을 모으는 일을, 자본이 자연에 어울리는 일을, 몰라도 되는 일들. 머물렀다면 모를 일들 빡세Pakse가 고향 같은 일을, 지난 내가 거기 있었다는 일을, 그러나 나는 머무를 수는 없다는 일을, 알아서 괜찮은 일들.

Coronaized 2022 2022.10.10

23. 길을 넘는다 from 베트남 다낭 to 라오스 아타프

잃어버려도 어쩔 수 없겠지만 부족해도 버틸 수 있겠지만 잊은 것은 없는지 채울 것은 없는지 마지막으로 확인을 한 후 태풍 '노루'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열흘 간의 다낭을 떠난다. 빗줄기를 피하며 환호를 받으며 떠나야 할 방향은 남서쪽이고 달려야 할 거리는 230km이다. 그 끝에는 라오스 국경에서 20km 떨어지고 캄보디아 국경에서 25km 떨어진 변방의 소도시, 플레이껀PleiCan이 있다. 플레이껀에서 깊은 밤을 보내고 캄보디아 국경으로 가는 고원을 들렀다가 베트남 보이BoY 국경 심사소에서 출국 신고를 하고 라오스 푸끄아PhuKeua 국경 심사소에 입국 신고를 오토바이와 함께 마친다. 달려야 할 방향은 서쪽이고 떠나야 할 거리는 100km이다. 좁고 굽고 거친 그 길에는 얼마되지 않은 마을과 얼마 ..

Coronaized 2022 2022.10.06